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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밤이 밤답고, 쓰레기 타는 냄새가 좋은 동네
작성자 소소하루 동창
작성일자 2012-02-15
1.
아내의 고등학교 동창 부부가 최근 큰 마음먹고 경기도 시골 마을로 내려가 펜션을 시작했습니다. 한창 건축할 때 한 번 방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마을에 남모르는 실례를 한 뒤(참조 : http://yourpen.tistory.com/22) 한동안 왕래 없이 살다가 최근 주말을 이용해 다시 그 마을을 찾았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에 집에 가 아내와 급히 옷가지를 챙기고, 선물로 줄 불족발을 포장한 다음에 출발했기 때문에 오밤중이 되어서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차 엔진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집들은 전부 깜깜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집집마다 문 밖에 내놓은 커다란 드럼통들이 문지기처럼 든든한 건 몇 달 전 내려왔던 때와 비슷합니다. 차의 창문을 다 닫고 있었는데도 그 드럼통 속에서 쓰레기 타는 냄새가 따닥따닥 나는 듯 합니다. 

2.
아직 한창 공사 중 방문했을 때, 그래도 한적한 시골이고 하니 해가 산등선에서 수채화처럼 번지는 것을 신호 삼아 집집마다 피워 올리는 아궁이 연기가 도시 촌놈의 정서를 고봉밥처럼 채워주길 기대했었는데,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요즘 같은 때에야 밥 짓는 연기가 하늘 도화지에 섞일 리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습니다. 대신 저녁이면 집집마다 대문 앞에 커다란 드럼통을 내놓고 쓰레기를 태울 때 나는 연기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음식쓰레기에 낙엽 모은 것 등을 소소하게 태우는 것이라서 그런지, 기분 좋아지는 냄새가 서서히 공기에 스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럼통이란 실패가 얇은 연기를 실 가닥처럼 뽑아내자 누군가 ‘하루 마무리’의 향기를 이불처럼 엮어 밤을 맞는 마을을 덮어주는 듯 했습니다. 그 이불 같이 덮고 싶었습니다.

3. 
자정 가까이 처음 본 완성된 펜션에 도착을 하니 주인 내외가 문을 열어줍니다. 오밤중에 한 상 차리고 불족발을 나누고 이야기를 건넵니다. 사실 자정이라면 저희 부부에게는 크게 늦은 시간이 아닌데, 친구 내외는 벌써 졸린 기색을 붉게 양념된 돼지 다리 속에 자꾸만 숨깁니다. 도착하며 얼핏 보니 방방마다 손님이 다 들어차 있었는데, 그래서 피곤한가 봅니다. 그래도 멀리서 친구가 왔다고 후식 아이스크림에 차까지 대접하며 반가움을 표현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대답하고, 또 열심히 묻습니다. 새로 시작한 펜션 사업이 녹록치 않은가 봅니다. 시골에 산다는 게 평화롭기도 하지만 무료하기도 한가 봅니다. 동네에서 제일 젊은 여자 분이 60대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아내가 하루 종일 사람 상대하느라 피곤했을 친구 부부에게 자기도 피곤하다며, 얼른 자자고 합니다. 

4. 
다음 날 저희 부부는 근처 온천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먹을 시간 즈음 다시 친구의 펜션으로 출발했습니다. 마주 오는 차나 뒤 따라오는 차가 모두 드문드문한 좁은 찻길 옆은 온통 논과 밭이었습니다. 가끔 저 멀리 집들이 하나 둘씩 있고,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보이지 않는 푯말이 듬성듬성 박혀 있고, 그리 크지 않은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져 있는 것이 다였습니다. 온천에서 나올 때 이미 해는 저녁 반찬 준비가 한창인 아낙 손의 계란처럼 산에 부딪혀 온 사방에 누런 물을 퍼트리고 있었는데 조금 운전을 하고 가다보니 어느 새 누가 그랬는지 하늘까지 꼼꼼하게 닦여 세상은 군청색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5.
군청색이 자꾸만 진해져 헤드라이트를 켰습니다. 가끔 보이는 집들에도 작은 불들이 켜졌습니다. 하지만 푯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지 않은 나무들도 아주 희미한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논과 밭은 이미 오래 전에 시야에서 없어졌습니다. 밤에 불을 켜 시간에 반항하는 것이 헤드라이트 손잡이를 돌리고,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리는 것만큼 쉬웠는데 이 근방에서는 지금 저와 작은 집들만 군청색에 흰색을 섞어 놓습니다. 차의 속도를 줄이고 너나 할 것 없이 하늘에서부터 비처럼 내려오는 군청색을 자기 색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풍경을 두리번거립니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 색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사물들이 자기의 경계를 스스로 지우고 있습니다. 논이 밭이 되고, 그 안에 푯말들과 울타리들과 나무들이 테두리에서부터 서로서로 섞이기 시작합니다. 사물을 규정하는 아웃라인이 마술처럼 사라집니다. 여기서는 밤을 밤이라고 합니다. 친구 부부가 어제 자정부터 졸려 했던 건, 밤을 밤처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런, 더 늦기 전에 도착해야겠습니다. 페달을 밟습니다. 

6. 
도착한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고기를 굽고 냄새를 뺍니다. TV를 끄고 음악을 틉니다. 어제 못 다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온천에 가 있는 사이 손님을 보내고, 새 손님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묵었던 자리를 청소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냥 예약을 받고 차로 왔다 갔다 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새로 들어온 손님이 춥지는 않을까 몇 번씩 보일러와 온도를 확인하고, 혹시 음식이라도 필요할까 예비로 김치도 냉장고에 쟁여놓고, 식당에서 반찬 추가하듯 무심하게 반찬을 부탁하는 옆방 손님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정성스레 반찬도 가져다주고 기념 사진도 찍어줍니다. 생전 처음인 서비스업이란 게 잘 어울릴까 생각하다가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사람들과 섞여 들어가는 친구 부부의 모습에 안심합니다. 오늘은 이 동네의 밤과 섞이지 않고 제법 늦은 시간까지 우리 부부 때문에 일어나 있으니, 고맙습니다.

7.
밤다운 밤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어제 왔을 때처럼 오밤중에 집으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친구 부부의 만류에 하룻밤을 이곳에서 더 보내기로 합니다. 오랜만의 교외 외출에 기분이 한껏 들뜬 아내와 단둘이 남은 주말을 보내고 싶었던 계획은 실패합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의 드럼통 실패에서 풀린 연기 같은 실들이 ‘하루의 향기’란 이불을 만들어 마을을 덮어 내릴 때, 도시에서 온 이방인도 슬그머니 그 따듯한 이불 밑에 섞여 들어갑니다. 누가 끼어들었는지 모르는 척 해주는 시골 밤의 넉넉함이, 사람이 고팠던 친구 부부와 여유가 고팠던 우리 부부를 고봉밥처럼 채워줍니다. 배가 부른 건, 아까 먹은 고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루 동안 쌓아올린 테두리를 밤에는 좀 지워버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저희 집에서 어떻게 해야 밤을 밤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리를 합니다만 금방 답을 내지는 못합니다. 서울의 불빛은 제 의지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 마무리가 향긋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은 변함이 없습니다. 먼저 쓰레기를 내다 태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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